명치나 맞지 않으면 다행이지 (2)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하는 책이라 가장 좋아하는 에피소드를 여러개 올릴 예정-

 

 

아줌마(100p)

공공장소에서 많은 사람이(주로 중장년층이) 아무 예고 없이 다짜고짜 밀고 당기고 얌체처럼 정보를 캐 간다. 도무지 초면에 이뤄지는 대화의 ㅈ러차라곤 찾아볼 수가 없다. 잡생각을 하며 길을 걷는데 갑자기 "동사무소가 어디요?"라는 소리가 옆통수에 꽂히면 옷 속에 얼음을 집어넣은 양 불쾌하다. 듣는 사람 기분은 생각도 않고 용건만 챙기면 그만인가. 내 삶에 불쑥 끼어들었으면 접대용 표정을 짓는 노력 정도는 하라고. 복수심에 불타 "동사무소?"라고 반말로 대꾸하고 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골탕 좀 먹어 보시지. 

석양이 아름다웠던 어느 가을 오후 센티멘털해져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 언제 와요?"

 

깜짝이야. 땅에서 솟아난 어떤 작은 아줌마가 들이댔다. 그녀는 이미 나의 사생활 공간인 반경 30센티미터 안쪽으로 침투한 상태였다. "실례합니다."도 "죄송하지만."도 "저기요"도 없었다. 한껏 올려다보며 얄밉게 웃을 뿐이었다. 버스가 2분 이내에 도착할 것을 알고 있었지만, 빈정이 상해서 정보를 넘겨주고 싶지 않았다. 

 

"몰라요."

 

"핸드폰으로 찾아보면 알잖아요."

 

이 눈치 없는 아줌마가 쿨하지 못하게 추궁했다. 최악이다. 이 인간이 진심으로 싫어졌다. 핸드폰 없다고 하고 싶었지만 이미 손에 들고 있어서 그럴 수 없었다. 급기야 거짓으로 앱을 뒤적이는 척하고 15분 뒤에 온다고 거짓 소문을 흘렸다. 찌라시 정보를 철석같이 믿은 그녀는 근처 편의점으로 사라졌고, 잠시 후 나는 유유히 버스에 올라탔다. 창밖으로 망연자실한 그녀의 표정을 봤다. [미션 임파서블]의 톰 크루즈가 된 기분이었다. 

 

 

 

2020/05/09 - [한구절] - 명치나 맞지 않으면 다행이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