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치나 맞지 않으면 다행이지 (1)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하는 책이라 가장 좋아하는 에피소드를 여러개 올릴 예정-

 

우리 코코가 물어뜯은 흔적..

 

버스(97p)

그런 버스가 있다.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사람들이 같은 정거장에서 내리는 동네 셔틀 같은 버스. 그날도 버스는 지하철역 정류장까지 가는 승객으로 만원이었다. 문이 열리기 무섭게 뉴타운 출근객들은 너도나도 티머니 단말기에 카드를 내밀고 변비 똥처럼 꾸역꾸역 밖으로 밀려나왔다. 불쌍한 미스 티머니는 낭랑한 목소리로 앵무새처럼 지껄이기 바빴다. "삑....삑.... 카드를 한 장 만 대..... 이미 처리되었.... 삑.... 카드를 한 장만.... 삑...." 나는 머리에 왁스를 과하게 바른 아저씨와 몸을 맞댄 채 팀워크가 어긋난 이인삼각조처럼 멈칫멈칫 문 쪽으로 전진하는 중이었다. 그때 뒤에서 누가 소리쳤다. 

 

"비키세요!"

 

확 짜증이 나서 돌아보니 웬 사회학과 학생처럼 생긴 여드름투성이 청년이 우리 이인삼각 조를 경멸하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비키라고? 자기만 내리는줄 아나. 소리는 왜 질러. 그는 멍청이처럼 귀에 이어폰을 끼고 있었다. 이봐 학생. 그따위로 지껄이면 비켜주고 싶겠나. 명치나 맞지 않으면 다행이지. 

 

 

 

2020/05/10 - [한구절] - 명치나 맞지 않으면 다행이지 (2)